그런거 있잖아

최근에 어쩌다가 유튜브에서 부기 드럼이라는 사람을 봤어.

드럼을 치는 사람인데. 되게 잘쳐. 분명 예술가이고 음악인이야. 그런데, 코믹한 드럼 영상을 올리면서 유명해졌더라고.

많은 음악인들이 그래. 김태원도 그렇고, 김도균도 그렇고. 한국 락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 인물들인데, 결국 예능하고, 편의점에서 밥사먹고 그러자나. 음악인의 가오 이런거 다 버리고 말야. 사실 좀 안됐어.

근데 이게 내가 보면 자존심 상할 일인데. 보면 꽤 행복해보여. 예능하면서 돈벌어서 가족들 먹여 살리고, 남편 아빠 노릇하고 말야. 젊어선 예술이 어떻고, 음악이 어떻고 해도, 내려놓으니까 더 잘 되고 잘 사는거 같애.

나도 그런거 같애. 사업인지 예술인지 뭔지 모를 객기 부리다 이제 좀 알 것 같애. 보이스톡 효과음에 드럼치면 어떻고, 아기상어에 드럼치면 좀 어때. 그게 나한테 주어진거고, 그래도 드럼은 칠 수 있는데. 사업 별거 없어. 되는 일 만들어서 돈 버는거야. 그리고 그 번 돈으로 내 가족 행복하게 해주면 되는거야.

옛날에 아버지가 그랬어. 사업은 자아실현 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내 처자식 먹여살리려고 하는거라고. 이젠 알거 같애.

Always Blue

주커버그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이다”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얘기했다.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사실상 실리콘밸리의 공식 표어이다.

실리콘 밸리의 작은 집. 4~5명의 geek들이 ‘세상을 바꾸겠다’며 창업을 한다. 그들은 자기의 제품과 기술이 뛰어나다며 창업대회에 출전하지만, 막상 가보니 개나 소나 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한다.

이들이 바꾸려는 세상은 대체 뭘까? 그들이 생각하는 이 세상의 문제는 무엇일까? 어쩌면 세상은 그다지 완벽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나쁘지만도 않은 것은 아닐까? 그들이 보는 사회의 단점은, 꼭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HBO의 인기 시리즈 Silicon Valley가 6번째 시즌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실리콘 밸리는 근 3~40년간 미국과 글로벌 경제의 핵심이었으니, 그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물은 소재만으로 충분히 대중적 인기를 끌만 했다. 딱 적당한 미국식 유머에, 리얼한 연출, 적절히 고증된 창업 스토리는 나의 취향에도 딱 맞았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실리콘 밸리를 맹목적으로 우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모순과 허접함을 희화화하는 쪽에 속한다.

나는 최근에 마지막 시즌을 몰아서 보았고, 마지막 에피소드에 도달하기 전까진 사실 매우 실망스러웠다. 여느 시리즈물이 그렇듯, 정해놓은 결말까지 조급히 달려가는 전개가 다소 억지스러웠고, 제작의 한계 때문인지 에피소드 수도 적어 이전 시즌들보다 특유의 색을 잃은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마지막회는 이러한 실망을 불식시켰다. 결말은 대충 이렇다. 주인공의 회사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촉망받는 회사가 되고, 세상이 주목하는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런칭 바로 전 날, 그들의 인공지능이 세상의 모든 보안 체계를 뚫을 수 있는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카이넷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6년간 온갖 고난을 뚫고 드디어 정말 세상을 바꿀 기술을 만드는데 성공했는데, 이걸 세상에 내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들의 결정은 당연히 폐기. 그런데 그냥 폐기가 아니라, 그 누구도 다시 시도하지 못하게, 일부러 처참한 실패를 가장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실패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10년 뒤로 넘어간다. 세상의 변화를 울부짖던 그들은 여전히 그런대로 각자 잘 살고 있다. 허무하게 끝난 6년의 여정 이후, 그들은 아주 평범하게, 잘 산다. 세상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고, 또 살만하다.

잠시 치열함에서 벗어나 작은 성취를 기념할 때 그들이 하던 게임, Always Blue. 파란색이 나올 때까지 게임이 이어지고, 계속해서 파란색이 나오길 바라는. 파란색의 행렬이 이어질 땐 긴장되지만, 노란색이 나왔을 때 게임이 끝나며 비로소 환하게 웃는 그 게임. 게임은 끝나도 괜찮다.

이렇게 이 드라마 또한 결국 허무함을 얘기하며 끝을 맺는다. 하지만, 실패와 허무함 뒤에는 곧 평안이 따라온다는 희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세상을 바꾸지 않더라도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내 세상도 그렇다. 허무하단 건, 나는 더 나은 곳에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Dear Sports,

지난 며칠간, 스포츠계에는 두가지 커다란 사건이 있었다.

첫번째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사망. 두번째는 로저 페더러의 호주오픈 4강 진출. 이 두명의 GOAT(Greatest of All Time)의 운명은 극단적으로 갈렸다.

코비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더 안타까운 것은, 그가 은퇴한지 몇 년이 채 되지 않았고, 여전히 그는 코트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야 국내에 NBA 팬들이 많이 생겼지만, 사실 코비의 전성기는 90말~00중으로 국내에서는 대중적으로 체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운좋게도 현지에서 그의 전성기를 바로 목격할 수 있었다. 2001년, 내가 처음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갔을 땐 영어를 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해서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았다. 딱 하나 알아듣는 건 스포츠. 하는 것도 보는 것도. 말은 못해도 친구들을 만들 수 있게 해준게 스포츠였고, 홈스테이 집에서 볼 수 있는 채널도 스포츠 채널 뿐이었다.

그렇게 코비를 접했다. 내가 처음으로 응원했던 NBA 선수. 너무나도 독보적이었던 선수. 동점 상황에서 마지막 공격을 할 때, 그 마지막 슛을 던질 선수. 그걸 상대편이 알아도 못막는 선수. 그리고 그 공을 기여코 넣을 선수. 그는 이견의 여지 없는 자타공인 전설 중 하나이다.

스포츠에서 전설이라고 불리우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Good과 Great의 차이. 우승반지의 갯수일 수도 있고, 계약금일 수도 있고, 인생 스토리일 수도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차이는, 잘하는 것을 매우 잘하는 선수는 Good, 실수를 매우 안하는 선수를 Great이라고 생각한다.

발로 하든, 손으로 하든, 기구로 하든, 온몸으로 하든, 스포츠는 내 평소(평균) 실력의 몇%를 실전에서 발휘하는가가 중요하다. 그 말은, 모든 스포츠는 결국 실수의 격차에서 판가름이 난다는 것이다. 특히, 단 하나의 플레이로 모든 결과가 결정되는 긴박한 순간에서 실수를 하지 않는 선수들을 우리는 위대한 선수라고 부른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분명 그런 선수였다. 수많은 버저비터와 위닝샷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로저 페더러 또한 분명 위대한 선수라 불리는 선수이다. 게다가 현역이라니. 게다가 아직도 우승권이라니.

지금 진행중인 2020 호주오픈에서 페더러는 현재 4강까지 올라갔다. 그의 최근 성적을 보면, 메이저 4강 진출이 큰 뉴스는 사실 아니다. 그런데 그가 이번 토너먼트에서 4강에 올라온 과정은 정말 경이롭다. 두번의 위기를 말도 안되게 이겨내며 올라왔기 때문이다. 첫번째 위기는 2라운드에서 호주 선수 John Millman과의 맞대결. 페더러는 생각보다 쉬운 선수를 상대로 고전을 했고, 5세트 타이 브레이크까지 갔으며, 여기서 무려 8-4의 deficit을 극복하고 승리했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이걸 해낼 수 있는 선수가 얼마나 있을까.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며칠 후 벌어졌다. 8강전에서 미국 Tennys Sandgren 선수와의 맞대결. 세트스코어 2:1로 뒤진 4세트. 지면 집에 가는거다. 그리고 실제로 문턱까지 갔다. 그런데 무려 7번의 매치포인트를 이겨내고 4세트를 따냈다. 게임포인트도 아니고 세트포인트도 아니고 매치포인트를, 그것도 7번이나. 여기서 백미는, 그렇게 힘들었던 이 경기, 그는 첫번째 매치포인트에서 한번에 승부를 매듭지었다(개인적으로 이게 더 멋있다 진짜). 솔직히 이게 말이 되나? 한 세트에서 7번의 매치포인트를 극복했다니. 과거 메이저 경기에서 이런 기록이 있기는 할런지조차 모르겠다. 그 역시 위기는 극복하라고 있는 선수인가보다.

암튼, 지난 며칠간 코비와 페더러의 각기 다른 소식을 들으며, ‘스포츠’와 ‘위대한 선수’가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떠올렸다. 스포츠, 사실 몰라도 안봐도 그만이다. 엔터테인먼트 컨텐츠로서의 스포츠는 대체제가 참 많다. 영화나 TV를 보면 그만이니까.

작년이었을까. NBA 플레이오프 중, 토론토 랩터스의 Kyle Lowry 선수가 했던 인터뷰 답변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현재 당신이 느끼고 있는 압박감은 어떤 수준인가요?”라는 인터뷰 질문에 그는, “To me, pressure is what my ma and grandma had to go through, feeding my family, goin’ to work 5 in the morning, getting a bowl of cereal on the table, that’s pressure”라고 답했다. 인터뷰어를 참 무안하게 만들었을 답변이지만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수천만불의 연봉을 받는 슈퍼스타들이 고작 경기 하나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생존을 위해 하루 하루 버텨내는 것이 실은 더 무거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 외에도 스포츠에 대한 허무를 다룬 이야기들은 많다. 조치훈 9단은 바둑에 대해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란 말을 남겼고, 슬램덩크는 “그깟 공놀이”라는 말도 남겼다. 한 야구감독은 선수들에게 “고작 공놀이 하고 수십억 버는 너네들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얘기한 일화도 있다고 한다. 그래, 뭐 스포츠가 나한테 무슨 도움이 얼마나 되겠어.

하지만, 그럼에도, 스포츠는 나에게 많은 것을 준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 중, 영웅에 대한 그 어떠한 경이와 존경.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하는 그들이 주는 희망. 이런 것들은 가끔이지만 분명 내게 용기를 주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에 감사한다. 나에겐 추억 그 이상인 코비 브라이언트. 다른 유명인사들의 사망소식보다, 코비의 죽음은 나에게 꽤나 슬픈 일로 남을 것 같다.

코비 형. 말 한마디 못해 외로웠던 내 중학교 유학 시절, 내가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당신의 퍼포먼스를 즐길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사랑하는 딸 Gigi와 함께 편안히 쉬길 바랍니다.

Thank you Kobe,

Thank you Sports.

kobe bryant rip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성공

“If you get to be 65 or 70, and later, and the people that you want to have love you actually do love you, you are a success.

You get exactly one mind and one body in this world, and you can’t start taking care of it when you’re 50. Just remember that you just got one mind and one body.”

– Warren Buffet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성공한 것. 돈이든, 자유든, 명예든, 결국은 사람이 사랑을 받기 위해 쫓는 것들.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그러기 위해서 사랑을 먼저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정말 뻔하지만, 노력해야만 이룰 수 있는 걸 진리라고 하던가.

우리는 두개도 새개도 아닌 딱 하나의 몸과 정신을 갖고 있다. 이 걸 어디에 쓰고 어디에 투자하느냐를 의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70살이 되었을 때, 더도 말고 딱 한 사람 날 사랑해주고, 나도 그 사람의 안위와 정신을 채워줄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

그러기 위해 내 몸과 정신에 투자를. 두 발 땅 위에 딱 붙이고, 뚜벅 뚜벅 걷기로.

Stephen Curry와 혁신

warriors (스타트업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Golden State Warriors)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농구팀(주니어 레벨, 4군)에서 포인트 가드로 뛴 적이 있다. 친구들과 놀면서 할 때와 달리 처음으로 (그 것도 미국에서!) 체계적인 팀 농구를 하다보니, 다양한 작전과 전략을 항상 생각하면서 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제품에 대한 상상을 하며 창업을 준비할 땐 재밌지만, 막상 사업을 시작하면 골머리 썩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하루는 경기가 끝난 후, 체육관의 트레이너가 내 발목의 붕대를 풀어주며 잠깐 대화를 나눴다.

트레이너: “미덥, 너는 공을 잡으면 제일 먼저 뭘 하니?”

나: “음.. 골대에 더 가까운 동료를 찾아 패스를 해야죠. 만일 마땅치 않으면, 상대 수비가 맨투맨인지 지역방어인지에 따라 스크린을 이용해서 돌파하거나 볼을 돌려서 수비대형을 뒤섞거나 해야죠. 그러다 보면 빈 공간이 나올거고 그 쪽으로 드리블 해서 파고 들어야죠.”

트레이너: “맞아. 근데 그 이전에 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그 건, 슛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거야. 그리고 슛을 할 수 있으면 슛을 해.”

맞다. 농구는 슛을 해서 공을 림 안으로 넣어야 점수를 얻는 경기이다. 게임 안에 있다 보면 게임에 함몰돼 경기의 본질과 목적을 잊게 된다. 골대에 가까운 동료에게 패스를 하는 것도 슛을 하기 위함이고, 빈 공간을 만드는 것도 결국은 슛을 하기 위함이다. 이 중요한 깨달음을 얻고… 나는 결국 더 머리가 복잡해져, 농구를 그만 두게 되었다.

요즘 NBA를 보면서, 구체적으로는 농구라는 게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Golden State Warriors를 보면서 매우 오래된 이 대화가 새삼 떠올랐다.

농구의 룰은 간단하다. 공을 던져 림 안으로 제일 많이 넣은 팀이 이긴다. 하지만 멀리서 공을 던져서는 딱 공만한 크기의 림 안으로 넣는 것이 매우 어려우니, 슛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골대 가까이 가서 던지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서 매우 당연스럽게도 골대에 다가갈 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더 큰 놈들이 버티고 수비를 한다.

이제까지 NBA의 역사를 봐도, 대부분 빅맨들이 팀의 성적에 가장 직접적인 기여를 해왔다. 윌트 체임벌린, 빌 러셀, 카림 압둘 자바, 하킴 올라주원, 샤킬 오닐, 팀 던컨, 등.. 역대 리그의 강팀들은 모두 슈퍼스타 빅맨들을 보유해왔다. 마이클 조던이나 코비 브라이언트같은 화려한 플레이어들도 결국은 빅맨의 서포트 위에서 날아다닐 수 있었다.

강-2 (슬램덩크에서 강백호는 농구 초짜이지만 천부적인 신체능력으로 골밑을 제압하면서 팀의 중심이 된다)

그 동안의 빅맨 중심의 농구 패러다임을 보면 마치 대기업들이 장악을 하고 있는 제조 산업을 보는 것 같다. 덩치도 덩치지만, 일단 대기업은 기본적으로 리스크보단 안전,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이 것 저 것 다 분석하고 비교하고 결국은 upside가 큰 쪽 보다는 downside가 작은 쪽을 선택한다. 뭐 하나 만들려면 부지도 사고, 생산 라인도 깔고, 수백 수천 명의 생산과 영업 인력, 수십 수백만의 물량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가드에서 포워드로, 포워드가 다시 센터에게 공을 순차적으로 전달하듯, 대기업은 공을 잡게 되면 치밀한 전략부터 짜고 연구/개발 – 생산 – 마케팅을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물건을 만들기 전부터 얼마나 팔릴지 대충이라도 알아야만 공격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결국은 엄청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우리에게 안전한 선택은 저들에게도 안전한 선택이고, 골대에 가까워져서 슛은 좀 더 용이하지만, 상대팀과의 차별은 없다. 가끔 발 빠른 가드나 화려한 스몰포워드가 코트를 휘젓고 다니듯 기발한 마케팅으로 차별을 두지만, 결국엔 가격으로 승부하고 제로썸 경쟁을 한다. 그리고 아주 미세한 차이로 승부가 갈리고 시장이 정리된다.

그런데 NBA 탄생 이래 크게 바뀌지 않았던 농구의 패러다임이 지금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2014-2015 시즌 챔피언 팀 Golden State Warriors(이하 워리어스)가 있고, 또 그 핵심엔 Stephen Curry(이하 커리)가 있다.

curry(농구의 게임을 바꾸고 있는 Stephen Curry)

그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아주 간략히 그의 짧은 업적을 정리하자면.. 슛은 곧잘 했지만 작은 신체 조건과 다소 떨어지는 운동 능력 때문에 실력에 비해 과소평가를 받으며 2009년에 NBA에 데뷔한 그는, 꾸준히 성장하며 2013년에 레이 앨런(살아있는 전설 슈터)의 단일 시즌 최다 3점슛 기록을 깨면서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로 매년 리그 역사의 모든 3점슛 관련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도배하고 있다. 그 것도 다시는 깨지지 않을 것만 같은 인간계를 넘어서는 성적으로 말이다. 특히 현재 시즌(15-16)에는 50% 이상의 3점슛 시도율에 거의 50%에 육박하는 성공률을 장착해 진정한 사기 캐릭터로 거듭났다. 이런 선수는 단언컨대 NBA 역사 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아름다운 3점슛들을 잠시 감상하자)

그의 미친 3점슛 능력이 특별한 이유는, 그는 굳이 경쟁이 심한 골밑으로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말도 안되는 거리에서, 그 누구도 감히 슛을 시도하지 않는 거리와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게 슛을 넣어대는데, 상대편은 정말 정말 손 쓸 방법이 없다. 그의 미친 장거리 3점슛 비거리 때문에 상대편은 매순간 하프코트에서부터 프레스 디펜스를 해야할 판이다. 그는 이전에 존재했던 슈퍼스타들과 전혀 다른 종류의 전율을 일으킨다.

개똥슛(슬램덩크의 정우성도 개똥슛을 통해 빅맨들의 블락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커리를 중심으로 한 전례 없는 3점 중심의 공격 (혹은 스몰라인업) 농구를 하는 워리어스 팀의 성적 또한 리그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이번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24연승을 하며 미국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긴 개막 연승 기록을 기록했고, 아직도 홈에선 40연승(16.01 기준)으로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지금의 페이스라면 조던의 시카고 불스가 세웠던 불멸의 시즌 72승 기록을 깨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더 재밌는 점은, 나머지 29개 팀들이 이 사기적인 팀을 어떻게든 이겨보기 위해서 워리워스를 상대할 땐 (어쩔 수 없이) 본연의 플레이 방식을 버리고 스몰라인업 공격으로 맞불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 실패한다. 그들에겐 커리같은 슛터가 없을 뿐더러, 워리어스가 오랫동안 쌓아온 저력을 금세 베낀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 많은 대기업도 한번 궤도에 오른 스타트업은 이기지 못하는 모습과도 비슷하다.

빅맨 농구가 대기업의 방식이었다면, 커리의 농구는 스타트업의 방식이다. 스타트업은 대개 기성 기업이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사소한 것에 집요하게 파고든다(성공률이 낮은 3점슛을 던지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라고 치부하던 때도 있었다). 골밑으로 들어가봐야 덩치에 밀려 상대가 안되지만, 또 굳이 경쟁을 할 필요도 없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격을 한다. 골밑슛보다 성공률은 떨어지지만, 슛 시도는 더 많이 할 수 있다. 그렇게 슛 시도를 많이 하다보면 성공률은 높아지고, 성공을 밥먹듯이 하는 연쇄창업자들이 탄생한다. 미국엔 리처드 브랜슨이나 페이팔 마피아, 국내엔 5Rocks의 노정석 창업자, 버즈빌의 이관우 대표, 빙글의 문지원/호창성 대표 등이 대표적인 3점슛터이다.

혁신은 이렇게 일어난다. 생각지도 못한, 혹은 불가능해 보이는 방식으로 새로움을 만들고 경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Peter Thiel이 “Zero to One”에서 말하는 ‘창조적 독점‘처럼 말이다.

커리의 예측 불허의 플레이들을 보면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흥분이 된다. 사실, 나는 언더독 성향이 강해서 강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워리어스와 커리는 다르다. 아마 그 이유는 그들은 남들이 잘 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1 to n’이 아닌 ‘0 to 1’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스타트업처럼 말이다. 그들의 독점이 오래 갔으면.. 그리고 그들의 게임이 새로운 기준이 되는 걸 목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Artistic Intelligence

최근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지만 대부분의 hype들이 그렇듯 인공지능도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1940년대부터 공론화 되었던 개념이고, 헐리우드에서도 끊임없이 다루는 단골 소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인공지능 = 인류멸망’이라는 단순한 공식을 따른다.

물론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극단적인 일이 당장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분명 인간 고유의 영역이던 ‘노동’에는 이미 큰 변화가 다가오고 있는 건 사실이다. 노동시장의 구조가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바뀌고, 근 미래에 또 다른 산업혁명이 일어날 것처럼 보인다. 점점 스마트해지는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기자, 의사, 변호사, 변리사, 자산관리사 등의 전문직 노동자들도 인공지능의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참고: http://www.lgeri.com/industry/general/article.asp?grouping=01030100&seq=259)

여기까지는 많은 분들이 이미 걱정해주는 부분인 것 같은데.. 이제까지 어떠한 곳에서도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영역이 있는 것 같다: “예술”. (똑똑하신 분들은 배고픈 영역엔 관심 없는건가..)

컴퓨터가 예술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상상하기 어렵다. 예술은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일인데 그 걸 컴퓨터가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막말로, 수많은 랜덤 변수와 색채이론을 반영한 색 조합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컴퓨터가 포토샵에 잭슨 폴록의 ‘가을의 리듬’과 비슷한 그림을 뚝딱 뚝딱 그린다 한들, 그게 어찌 예술이겠는가. 인정하기 어렵다.

jackson_pollock

하지만, 이 인정하기 싫은 일이 조만간 일어나고, 컴퓨터가 예술가들의 노동력 조차도 빼앗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인정 따위는 묻지도 않은채 말이다. 이게 말이 될까?

3가지 전제 하에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1. 예술은 패턴의 조합이다: 사실 예술은 창조가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세상에 흩뿌려진 수많은 정보들을 조합하는 것이 예술이다. 미술, 음악, 영화, 디자인 등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창작자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을 새로운 (혹은 새로워 보이는) 형태로 재조합한 것의 결과이다.

인공지능도 똑같다. 수많은 데이터(빅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고(프로세서) 그 안에서 패턴을 찾아(머신러닝, 딥러닝) 새로운 통찰을 만드는 것이 인공지능의 기본적인 구조이다. 만약 예술가들의 사고패턴에 대한 데이터만 일정량 확보한다면, 컴퓨터가 예술을 한다는 이야기가 그리 허무맹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2. 예술은 노동이다: 창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술 분야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하나의 창작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노가다’가 필요하다. 단순하게는 자르기, 붙이기, 찾기, 버리기와 같은 단순 노동부터, 색조합(미술), 화성학과 코드진행(음악), shot variation(영화)와 같이 전문성을 요하는 노가다까지.. 예술도 수많은 노동의 결과물이며, 인공지능이 창출할 생산성의 value add 폭이 매우 클 것이다.

3. 예술? 이제는 엔터테인먼트다: 예술의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예술은 ‘작품=예술가’였다. 컴퓨터가 모나리자를 그린다고 그 컴퓨터가 다빈치가 되는 것이 아니며, 때문에 그 것은 상품가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작품과 예술가의 연계성이 매우 적다. 영화의 경우엔 작품의 규모가 커서 수많은 창작자들의 input이 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하고, 음악의 경우엔 가수, 작곡가, 작사가, 편곡자, 프로듀서의 분업이 세분화되기 때문이다. 작곡을 컴퓨터가 하든 인간이 하든, 듣기 좋으면 그만이고 차트에 오르면 장땡이다. 우리가 음악, 영화, 소설과 같은 예술분야를 “엔터테인먼트”로 분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듯 예술의 영역도 인공지능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사례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데, 구성요소가 비교적 단순하고 패턴 조합의 경우의 수가 적은 음악 분야를 시작으로 예술 AI 기술들이 생겨나고 있다. 한 예일대 교수가 개발한 ‘쿨리타(Kulitta)’는 바흐 스타일의 협주곡을 순식간에 작곡하고, Youtuber들을 위한 BGM 생성 서비스 (Jukedeck, http://www.jukedeck.com), AI 기반 자동 음원 마스터링 서비스 (Landr, http://www.landr.com) 등의 스타트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음악은 일찌감치 인공지능의 첫번째 타겟이 되었고, 조만간 실질적 가치를 만들어낼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리고 이 다음은 아마 영상 편집이 되지 않을까? 영상은 음악보다 훨씬 복잡한 형태의 데이터와 판단 프로세스를 요하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Computer Vision 기술의 발전이 동반되면서 컴퓨터가 영상의 정보를 인지하는 능력이 빠르게 늘고 있다 (아래 ‘Videos in Sentences Out’ 영상 참고). 이를 통해 컴퓨터가 직접 영상을 보고 NG컷을 판단하고, 다양한 shot variation을 시도해보고 최적의 결과물을 (사람보다 잘)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이나 영화같이 제작/유통이 이미 디지털화 된 분야는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미술은? 물리적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순수미술은 인간의 영역이 아직까지 크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순수미술 또한 ‘예술’이라는 인식의 변화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주시해봐야 할 것 같다. 혹시 모르잖나? 피카소의 혼을 담은 로봇 팔이 개발되어 이 로봇이 그림을 그리는 족족 수백만불에 거래가 될지.

물론,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예술가의 사고패턴에 대한 유의미한 양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디지털 데이터를 보유한 구글, 페이스북, IBM도 이런 데이터는 없지 싶다. 하지만, 각 예술 분야에서 당장 필요로 하는 서비스 사업을 통해 유의미한 데이터를 차차 축적해낸다면, 그 어떤 인공지능보다 차별화 된 “인공지능 예술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미생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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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도, 드라마 미생의 마지막회와 함께 나의 기나긴 대학생활도 끝이 났다.

장그래에게 주어진 원인터에서의 2년과 내가 가장 뜨겁고 열정적이었던 그 때의 2년이 교차하고, 이제 또 다른 불씨를 일으켜야 할 지금, 장그래와 오차장의 새로운 시작은 나에게 희망을 준다.

7년 반만의 졸업.

2년 계약직 장그래에게 그토록 간절히 필요했던 대학교 졸업장이 곧 내 손 위에 올려질 것이다. 그 졸업장이 누군가에겐 괜찮은 미래에 대한 설레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학자금 대출 상환 청구서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또 다른 졸업장으로의 입장권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이 졸업장은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의 대학교 졸업장은, 그 동안 가벼웠던 나에게 주어지는 무게추라고.

나는 가볍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것은 모르는대로, 아는 것은 아는대로,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싶은대로, 싫은 것은 싫은대로. 계획을 과소평가하고 현재를 과대평가하며, 정도(正道)보다는 흥미로운 길로 향하는 가벼운 발걸음에 취해있었다. 나는 과연 그 길 위를 걷기 위해 걸었던 것일까, 나아가기 위해 걸었던 것일까. 지금 서서히 취기가 가라앉고 있음을 느낀다.

어느새 서른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과연 김광석의 ‘서른즈음에’의 무게를 어느만큼 느껴보았다 할 수 있을까. 장그래가 집앞 계단을 오르며 불렀던 것처럼 간절하면서도 담담하게 이 노래를 불러본 적이 있을까.

내 과거의 모습을 부정하거나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적당한 무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고 오차장(루쉰)은 말했다. 그러니 내 앞으로의 희망에 무게를 다는 것도 나의 몫이고, 땅위의 길을 만드는 것도 내가 앞으로 딛게될 한 발 한 발의 무게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졸업장이 내 삶의 방식에 큰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란 걸 안다. 다만 내가 앞으로 어떠한 선택을 할 때에 그 결정에 대한 무게를 조금 더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캔디크러쉬에서 인생을 배우다

요즘 뒤늦게 캔디크러쉬에 빠져 틈 날 때마다 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 간단해 보이는 게임을 통해 인생의 레슨을 배웠으니, 150탄까지 오기까지의 시간이 그리 아깝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튼 각설하고 정리한다.

 

캔디크러쉬가 주는 10가지 인생레슨:

1. 폭탄은 그 때 그 때 제거하라.

사실 게임에서의 폭탄은 몇 번 기다려주고 언제 터져주는지 알려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인생에서의 폭탄은 기다려주지도 않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일단 보이면 무조건 제거하고 보자. 인생은 실전이다.

2. 깨지 못할 것 같은 탄도 어떻게든, 언젠가는 깨진다.

새로운 탄을 처음 할 땐 뭘 어쩌라는가 싶다. 두번째엔 이게 과연 깰 수 있는 건가 싶다. 세번째엔 전의를 잃는다. 하지만 진실은 간단하다. 하다보면 깨진다. 걱정마라.

3. 무기는 타이밍이다.

무기 많다고 안심하지 마라. 한 번에 다 터지고 별로 남는 게 없을 수가 있다. 그리고 무기가 없다고 실망하지도 말자. 내가 필요한 순간에 콤보로 터뜨릴 무기 딱 2개만 준비하자.

4. 될 수 있는 것부터 해라.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거다.

게임을 하며 가장 화날 때는 “움직일 수 없는 캔디”가 나올 때이다. 연속해서 여러번 나오면 억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또한 게임의 일부이고 인생도 세상도 그리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이럴 땐 위의 2번을 되새기자.

5. 한 수 한 수에 너무 고민하지 마라.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내 움직임 다음에 어떤 캔디가 떨어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많은 변수와 가능성을 고려한 움직임을 하는 것이 좋지만… 뭐 해보면 알지 않나. 내일만 생각하는 것보단 오늘만 생각하는게 훨씬 낫다.

6. 대신 최종목표는 끝까지 잊어선 안된다.

신나게 캔디들을 깨다보면 목표를 쉽게 잊게된다. 백날 그렇게 해봐야 안깨진다.

7. 목표에 가까워질 수록 넓게 보라.

목표에 가까워질 수록 시각이 좁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의외로 더 효과적이고 간단한 해답이 조금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다.

8. 최고기록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 게임의 목적은 탄을 깨나가는 것이지 기록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1등을 하는 것보다 깨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다. 게임 하다보면 안다. 1등 별로 안 중요하다.

9. 시간은 만드는 것이다.

핸드폰 설정가서 시간을 내일로 돌리면 하트 채워진다. 시간은 돈으로도 살 수 있지만 노력으로도 만들어진다.

10. 음악과 함께 하라.

개인적으로 소리를 켜지 않으면 이 게임 못하겠더라. 음악은 항상 켜놓고 플레이하자.

 

원래 진리는 세상만물에서 찾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눈 크게 뜨고 살아야겠다.

철학이 담긴 디테일

요즘엔 Facebook 사용을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한다. 컴퓨터가 앞에 있음에도 다시 로그인을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과정이 귀찮기 때문이기도 하고 Facebook의 컨텐츠들이 점점 휘발성 정보들이 되면서 스마트폰으로 잠깐 잠깐 보는 것이 익숙해졌다. Facebook이 모바일 사용성과 광고 활성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소한 나의 개인적인 체감으로는 어느 정도의 성과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에 새롭게 쓰게 된 노트북으로 Facebook 접속을 시도한 적이 있다. 컴퓨터로 접속도 오랜만이었지만 새로운 device로 접속한 것은 족히 1년은 된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디테일이 나를 잠시나마 웃게 해주었다. 그 것은 바로 Facebook만이 할 수 있는 user verification (본인 확인) 기능이었다.

일단 일반적인 국내 서비스들의 본인 확인 기능들을 생각해본다면 떠오르는 몇 가지들이 있다. 가입 시에 설정해놓았던 주관식 문제에 답하기, 이메일주소/전화번호 등으로 인증번호 입력하기, 그리고 요새엔 아이핀이라는 정체 모를 서비스도 있는 듯 하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한번쯤은 이러한 본인확인 과정 때문에 짜증난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나인데 이 멍청한 컴퓨터에게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도 충분히 짜증나는데 그 과정까지 허접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수년 전에 가입할 때 설정한 문제와 답이 뭔지, 수십 개의 이메일 주소 중 어느 걸로 보조 이메일로 설정했는지는 아마 나보다도 내 정보를 맘먹고 캐고 있는 해커가 더 잘 알 것이다. 게다가 필자 개인적으로는 휴대폰인증이나 아이핀 또한 최악의 경험이었던 것이, 한국에서 사용하는 휴대폰은 내 명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나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아니게 되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Facebook은 달랐다. Facebook은 정말 나만이 알 수 있는 정보만을 물어보았다. 그 것은, 내 친구들이었다.

FB user verification

5명의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을 랜덤하게 보여주고 그들의 이름을 맞추면 이 멍청한 컴퓨터는 이 접속자가 나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단 몇 초 만에 본인인증을 마칠 수 있었고, Facebook만이 할 수 있는 기능에 한동안 망각하고 있던 Facebook의 힘을 느꼈으며, 잠시나마 잊고 지냈던 5명의 친구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이 과정이 특별한 이유는 크게 세가지: 본인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적으로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었고, 모두가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있어야만 하는 이 계륵을 재미있게 만들었으며, Facebook의 철학을 그대로 담아서 본인확인 과정마저 Facebook의 하나의 경험으로 녹여내었다는 점이다.

Facebook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의 목표는 똑같다. 세상을 더 가깝게 하자. 물론 상장 이후에는 돈을 벌겠다는 목표가 더 커진 것 같아 아쉽지만 이번 기회에 ‘그래도 Facebook이니까 이만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내가 이 잠깐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것은 제품/서비스의 하나하나가 회사의 철학 (특히 회사가 팔고 있는 철학)을 그대로 담고 있을 때, 그래서 소비자가 그 철학의 진실성을 경험할 때라는 것.

하지만 이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나 또한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비자들을 감동시키기에 실패하였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또한 이 철학을 확실히 믿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사업에, 제품에, 회사에 철학을 담아내려면, 남에게 팔기 전에 나부터 그 철학을 믿어야 하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글.

분야와 업태를 불문하고, 자신의 열정을 쫓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정말로 간단하면서도 종종 잊게되는 하나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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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는 모르는 한가지 진실이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일찍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창의적인 일을 하는 우리 모두는, 남다른 센스가 있기에 우리가 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격차가 존재한다.

첫 몇 년 동안은 당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별로일 것이다. 좋아지려 노력하고, 분명 좋아질 수 있지만,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당신의 그 센스는, 이 “게임”에 덤벼들게 한 그 센스는 죽여준다. 당신의 그 죽여주는 센스 때문에 당신의 결과물이 실망스러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넘지 못하고 포기한다.

내가 아는 모든 창의적인 사람들은 이 같은 과정을 거친다. 우리 모두 우리의 결과물이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이 과정을 거친다.

당신이 창의적인 일을 갓 시작했거나 아직 이 과정에 있다면, 당신은 이 과정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란 걸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지속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채찍질하며 꾸준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지속성만이 이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당신의 결과물은 당신의 포부에 맞게 나올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늦게 알아차렸다.

오래 걸릴 것이다. 오래 걸리는 것이 당연하다.

당신은 그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